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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13

고려의 발전과 혼란기 이자겸의 난 12세기 인종에서 고종 즉위 전후까지 90여 년간은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때 고려시대 초기부터 정치조직 자체에 내재되어 있던 문신 귀족 전성기의 타성과 부패 속에서 다양한 모순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불만이 확산되었습니다. 개경의 부패한 귀족사회에서 이러한 논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곧 이자겸의 반란으로 이어집니다. 귀족 세력의 대두는 필연적으로 그들 사이에 권력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세력이 점점 강화됨에 따라 인종과 의종 때 때 잇따라 귀족 반란이 일어났고 경원 이 씨의 반란은 그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11세기부터 대표적인 문벌귀족인 경원 이 씨가 외척이 되어 80년 넘게 권력을 잡은 적이 있습니다. 이자연의 딸이 문종황후가 되자 이자영의.. 2023. 11. 4.
고려의 성립과 후삼국 통일 10세기 초 신라에서는 왕위쟁탈전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정치적 혼란을 초래하였고 조세수취에 반대하여 전국 각지에서 농민봉기가 발생하였습니다. 지방 호족이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하여 세력을 키웠고, 그중에서도 신라 왕족인 궁예와 신라 장군인 경 훤이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경 훤이 먼저 후백제라고 자처하고 곧 궁예가 태봉을 설립합니다. 이로 인해 신라와 후삼국시대라고 불리는 후백제의 대립이 생겼습니다. 이후 궁예가 민심을 잃자 918년 통일신라 송악지역의 왕건이 궁예들을 몰아내고 왕의 자리에 올라 새로운 나라의 건국을 선언합니다. 국명은 고려 연호는 천수로 하고 919년 송악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한편 926년 발해가 여진에 침략당해 멸망하자 발해 왕족을 비롯한 피난민들을 받아들여 세력을 확장합니다. 이.. 2023. 10. 31.
발해 668년 당은 대동강 이북과 요동 지역의 고구려 영토를 점령하기 위해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습니다. 요동 일대에서는 고구려 난민들이 계속 당에 저항했고, 당은 고구려 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영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구려 난민과 말갈족, 거란족 등 많은 민족이 당의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696년 5월 이준과 손만영이 마침내 영주 도독의 폭정에 맞서 일어나 혼란을 틈타 고구려 장군이었던 대사리 걸걸중상과 아들 대조영이 유민, 말갈과 함께 영주를 탈출해 만주 동부로 이주합니다. 말갈인을 이끌던 걸사비우와 고구려 유민을 이끌던 걸걸중상이 전사하고 조대영이 집단을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대조영은 천문령 전투에서 자신을 쫓던 이해고와 당군을 격파하고 만주 동.. 2023. 10. 30.
남북국 시대 신라가 통일전쟁에서 승리한 676년부터 국가체제를 개편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귀족권력을 재정비합니다. 또한 고구려와 백제의 주민들을 통합하여 인구 증가와 생산성 향상으로 세금이 늘어나 수도를 재정비하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였습니다. 그 이후 만주에서 새로운 세력이 나타났는데 698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읍락에 있는 동모산을 점령하고 진극을 건국한 뒤 곧바로 국명을 발해로 바꾸고 스스로 고구려의 후손이라 주장합니다. 서기 900년 견훤이 남서부에 후백제를 창건하면서 신라의 분열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궁예가 신라 북부에 후고구려를 창건하여 후삼국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따라서 이때부터 남쪽 신라가 분열되고 후삼국시대가 전개되면서 사실상 남북시대의 양상과 공존하게 됩니다. 918년 태봉 왕건이 .. 2023.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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