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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668년 당은 대동강 이북과 요동 지역의 고구려 영토를 점령하기 위해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습니다. 요동 일대에서는 고구려 난민들이 계속 당에 저항했고, 당은 고구려 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영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구려 난민과 말갈족, 거란족 등 많은 민족이 당의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696년 5월 이준과 손만영이 마침내 영주 도독의 폭정에 맞서 일어나 혼란을 틈타 고구려 장군이었던 대사리 걸걸중상과 아들 대조영이 유민, 말갈과 함께 영주를 탈출해 만주 동부로 이주합니다. 말갈인을 이끌던 걸사비우와 고구려 유민을 이끌던 걸걸중상이 전사하고 조대영이 집단을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대조영은 천문령 전투에서 자신을 쫓던 이해고와 당군을 격파하고 만주 동.. 2023. 10. 30.
남북국 시대 신라가 통일전쟁에서 승리한 676년부터 국가체제를 개편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귀족권력을 재정비합니다. 또한 고구려와 백제의 주민들을 통합하여 인구 증가와 생산성 향상으로 세금이 늘어나 수도를 재정비하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였습니다. 그 이후 만주에서 새로운 세력이 나타났는데 698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읍락에 있는 동모산을 점령하고 진극을 건국한 뒤 곧바로 국명을 발해로 바꾸고 스스로 고구려의 후손이라 주장합니다. 서기 900년 견훤이 남서부에 후백제를 창건하면서 신라의 분열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궁예가 신라 북부에 후고구려를 창건하여 후삼국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따라서 이때부터 남쪽 신라가 분열되고 후삼국시대가 전개되면서 사실상 남북시대의 양상과 공존하게 됩니다. 918년 태봉 왕건이 .. 2023. 10. 29.
통일신라의 건국과 발전 삼국의 전쟁과 신라의 승리 신라는 진흥왕(540~576) 때 주변 영토를 적극 정복하고 삼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제동맹을 맺은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의 한강 상류 유역을 551년에 공격해 점령했습니다. 진흥왕은 국가 발전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하고 불교 종파를 개편하여 사상 통합을 추진합니다. 이때부터 신라는 삼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신라는 고구려의 통치하에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함경도 지역으로 진출하였고 562년 남쪽으로 대가야를 정복하여 낙동강 서쪽을 완전히 지배하였습니다. 신라의 이러한 확장으로 백제를 탄압하고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인천만의 수·당과도 직접 소통하여 그들과 연맹관계를 맺고 삼국의 .. 2023. 10. 29.
삼국의 정치와 사회 삼국 초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사회 발전은 시대와 양상이 다릅니다. 세 나라는 아직 국가체제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부족연합과 같은 사회를 넘어 점차 고대국가체제로 변모해 간 것입니다. 부족연맹 사회에서는 각 부족이 어느 정도 독립을 유지했지만 지배계급이 형성되고 왕권이 점차 계승되면서 부족권력은 왕권에 흡수되었습니다. 또한 대륙과의 잦은 접촉과 갈등을 통해 한의 정치조직이 수용되었고, 한의 정치제도에 기초하여 새로운 통치체제가 구축되었습니다. 특히 대륙과 직접 접촉할 수 있었던 고구려는 일찍부터 사회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죽 1세기 초 고구려는 왕호를 부를 정도로 발전하여 부족을 일종의 전사단족 조직으로 개편한 것입니다. 고구려는 5개 부족연합으로 시작하여 태조 때 연맹의 세력 확장으로 계루부 족장이 지.. 2023.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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