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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고려의 정치체제

by 세이브13 2023.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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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정치

 

광종 이후 유학을 공부한 6두품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최승로였습니다. 최승로는 왕권의 전제화에 반대하고 유교를 바탕으로 귀족정치를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종에게 건의한 시무 28조는 최승로의 정치이념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종은 처음으로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하고 지방호족의 세력을 약화시켜 중앙으로 흡수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려는 귀족중심의 정치체제로 정착하게 됩니다.

고려의 귀족들은 문벌과 가문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세력을 확대시키려 왕실과의 혼인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혼인으로 정권을 장악한 세력이 나타났는데 안산 김 씨와 인주 이 씨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안산김 씨가 약 50년 동안 외척으로 권력을 잡았고 인주이 씨는 80년 동안 권력을 잡았습니다. 따라서 고려는 정치적 사회적 여러 측면에서 귀족 중심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통치제도 


골품제위주의 폐쇄적인 사회였던 통일신라와 달리 지방세력이 중심이 되어 만든 나라인 고려는 과거제도를 실시하는 등 개방적인 사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이는 등 고대 사회보다 더 쳬계적인 정치체제를 갖추게 됩니다.  

 

고려는 왕권이 확립되기 전까지 태봉과 신라의 제도를 함께 실시하였습니다. 성종 때부터 당나라와 송나라의 제도를 도입하여 통치제도를 완성시킵니다. 중앙 행정기관의 최고기관은 3성 6부로 3성에는 중서성, 문하성, 상서성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이것은 당나라의 제도를 따라 만든 것이었습니다. 3성의 상서성 아래로는 실무를 보는 6부가 존재했습니다.  문하성에는 장관인 시중이 있었는데 수상의 역할도 같이 하였습니다. 3성의 고위관리들을 재신이라 불리었고 문하성과 중서성은 하는 일이 매우 밀접하여 중서문하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국가의 최고 기관이었던 중추원은 장관을 판원사라 하고 고위관리를 추신이라 명하였습니다. 또한  3성의 재신과 중추원의 추신을 재추라고 불리었습니다. 고려는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였지만 고려를 대표하는 독자적인 두 개의 기관이 있었습니다.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이 그것인데 도병마사는 국방과 군사문제를 결정하는 곳이었고 식목도감은 법과 국가의 중요한 격식을 관장하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은 고려의 독특한 귀족중심의 사회임을 보여주는 제도였습니다. 

 

 

지방행정

 

고려초기에는 왕권이 지방까지 미치지 않았습니다. 성종 때 12목을 설치하여 지방에 관리를 파견한 것이 지방행정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성종 14년에 경기 외에 전국을 10도로 나누고 12주에 절도사를 파견하였지만 제대로 실시되지 목 하였습니다. 그 이후 전국을 5도 양계, 경기로 크게 나누고 5도에는 안찰사, 계에는 병마사를 파견하였습니다. 

 

 

고려의 경제

 

상업을 중시한 고려는 신라 말기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전시과 제도를 만들고 토지제도를 개편하여 지배체제의 기반을 구축하였습니다. 또한 수취제도를 개편하는 동시에 운영에 필요한 여러 관청들을 설치하였습니다. 또한 신라의 민정문서체계를 계승하고 토지와 인구를 파악하기 위한 양안 사업이 시행되면서 호적이 작성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세금, 공물, 부역이 부과되었습니다. 또한 국가 주도의 산업을 재편하여 경작지를 확대하고 상업과 수공업의 체계를 확립시킵니다. 

농업은 기술 개발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상업은 시전을 중심으로 도시 상업이 발달하면서 지방으로도 상업이 확대됩니다. 수공업은 처음에 관청에서 주도하여 발전하였으나 점차 절이나 상인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민간중심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한편 벽란도에서는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페르시아 상인들과도 활발하게 무역을 하였습니다. 

 

 

 

송과의 무역

 


고려는 송나라와 긴밀한 정치적 우호관계를 형성하여 북방민족을 견제하였습니다. 또한 양국은 잦은 무역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교환했습니다. 고려가 송나라에서 수입한 물품은 주로 비단, 자기, 향료, 문구 등 귀족들의 사치품 위주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기와 서적은 고려청자와 목판인쇄의 발달에 각각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려의 사회 특징

 

고려의 신분은 크게 귀족, 중인, 평민, 천민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신분은 세습되었고 각 신분에 따라 그에 따른 위무가 있었습니다.  군현에 거주하는 농민들은 양민으로 세금과 공납, 역의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별행정구역인 향·부곡·소 거주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일반백성보다  차별을 받았지만 고려 후기 이후 특별행정구역은 일반 군현으로 승격하게 됩니다.  국가는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의창과 상평창을 설치하고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재혼한 여성도 고려의 왕비가 될 수 있었고 재혼은 일반적으로 흠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산은 남녀 평등하게 상속되었지만 여성이 관직에 진출할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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